성취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라!

민수기 30 : 1 9 (구약성경 246)

      : 1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수령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명령이 이러하니라 : 2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결심하고 서약하였으면 깨뜨리지 말고 그가 입으로 말한 대로 다 이행할 것이니라 : 3 또 여자가 만일 어려서 그 아버지 집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 서원한 일이나 스스로 결심하려고 한 일이 있다고 하자 : 4 그의 아버지가 그의 서원이나 그가 결심한 서약을 듣고도 그에게 아무 말이 없으면 그의 모든 서원을 행할 것이요 그가 결심한 서약을 지킬 것이니라 : 5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그것을 듣는 날에 허락하지 아니하면 그의 서원과 결심한 서약을 이루지 못할 것이니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였은즉 여호와께서 사하시리라 : 6 또 혹시 남편을 맞을 때에 서원이나 결심한 서약을 경솔하게 그의 입술로 말하였으면 : 7 그의 남편이 그것을 듣고 그 듣는 날에 그에게 아무 말이 없으면 그 서원을 이행할 것이요 그가 결심한 서약을 지킬 것이니라 : 8 그러나 그의 남편이 그것을 듣는 날에 허락하지 아니하면 그 서원과 결심하려고 경솔하게 입술로 말한 서약은 무효가 될 것이니 여호와께서 그 여자를 사하시리라 : 9 과부나 이혼 당한 여자의 서원이나 그가 결심한 모든 서약은 지킬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모든 일을 이루십니다. 우리는 순종을 통하여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고전 12:6)라는 말씀을 경험합니다. 자신의 사역에 순종함으로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기를 축복합니다.

 

        아주 오래전, 제가 첫 목회지에서 만났던 어느 여집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 집사님이 초등학교 5학년 때쯤, 어느 날, 반 아이들이 단체로 담임선생님께 매를 맞게 되었답니다. 아이들이 몹시 떠들었던지 선생님이 무척 화가 나서, 아이들을 한 줄로 세워 놓고, 손바닥을 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에는 그랬습니다.

      선생님의 매가 너무 세어서 먼저 맞은 남자아이들도 비명을 질렀답니다. 그때 그 집사님은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제발 매를 맞지 않게 해 주세요. 매를 맞지 않게 해 주시면, 나중에 예배당을 지어서 받치겠습니다.” 그런데 기도의 응답인지 선생님의 매질은 자기 바로 앞에서 딱 멈추고, 자기부터는 매를 맞지 않았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당을 지어 받쳐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다 결혼하였지만, 그 부담스러움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살림이 나아지지 않는데 예배당을 지어 드려야 한다는 부담감은 커졌습니다. 살면서 어려움을 겪을 때는 죄책감까지 더해졌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는 상담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에는 어떻습니까? 초등학교 어린이의 맹세라도 하나님께 한 약속이니, 더욱이 매를 맞지 않았으니 지켜야 합니까? 아니면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어린아이가 멋모르고 한 맹세이니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까? 지키면 좋고 안 지켜도 그만인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너는 여기 아바림 산줄기를 타고 올라가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을 바라보아라.”(27:12)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나안을 미리보라는 말씀이 아니라, 건너다보는 것으로 만족하라십니다. 그 땅을 본 다음에는, 그의 형 아론이 돌아간 것같이, 그 또한 조상에게로 돌아갈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모세와 아론이 신 광야 므리바에서 지팡이로 반석을 쳐 물을 내었지만,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물을 내는 기적을 일으켰지만,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지명하신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여 자신의 모든 권위를 물려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모세는 남은 사역을 충실히 하였습니다. 백성들에게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하여야 하는지를 가르쳤습니다(28:129:40). 계속해서 이어진 오늘 말씀에서는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가르칩니다. 2절 말씀입니다.

      : 2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결심하고 서약하였으면 깨뜨리지 말고 그가 입으로 말한 대로 다 이행할 것이니라

      모세는 이스라엘 각 지파 우두머리들에게 이것은 주님께서 명하신 것입니다.”라며 가르친 내용입니다. 모세가 각 지파의 대표들에게 말하면, 그들이 각 지파의 사람들에게 말하여 모든 이스라엘에게 전하여 알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서원하였거나 맹세하여 서약하였으면, 다 지켜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약속에 대한 여러 낱말이 사용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서원’, ‘결심’, ‘서약’, ‘입으로 말한 대로입니다. 서원[rd,n네데르5088]은 약속 또는 맹세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서약[h[;Wbv]쉐부아7621] 역시 맹세, 서약을 뜻하는 말입니다. 결심[rs;a에싸르632]도 맹세, 책임을 뜻합니다. 하기로[rs'a아싸르631]하였다는 말은 멍에를 매다는 뜻으로 역시 책임을 뜻합니다.

      서원이든 서약이든 결심이든 그것은 맹세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지키겠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그가 입으로 말한 대로 다 이행할 것라고 하십니다. 이행하다[hc;[;아싸6213]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어 성취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비슷한 말을 네 번이나 사용하여 하나님 앞에서 한 맹세를 엄중히 지키라고 합니다.

1. 사람이 서원하였으면 이행하여야 합니다.

      야곱은 자신을 죽이려는 형 에서를 피하여 브엘세바를 떠나서, 하란의 외가로 도망가는 중이었습니다. 가던 길에 해가 저물어, 들판에서 돌 하나를 주워 베개로 삼고, 누워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습니다. 땅에 층계가 있고,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 있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지금 누워 있는 이 땅을, 내가 너와 너의 자손에게 주겠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며, 내가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내가 너를 떠나지 않겠다.” 야곱은 그를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이에 야곱은 하나님께 서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고, 제가 가는 이 길에서 저를 지켜 주시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고, 제가 안전하게 저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 주시면, 주님이 저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며, 제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모든 것에서 열의 하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28:2022[])

      이것이 야곱이 한 벧엘에서의 서원입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방 땅에서 보호해 주실 것과 후에 다시 아버지의 집에 돌아오게 될 것을 바라며, 그 일이 이루어지면 자기 소유에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기로 약속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셔서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조건을 내걸고 맹세했습니다.

      서원에는 이렇게 조건이 붙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돌아오게 하시면 자신이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요구하신 것이 아님에도 자신에게 나타난 하나님이 놀랍고, 무엇보다도 도망을 치는 외로운 처지였기에, 자신이 할 일을 맹세하며 하나님께 도우심을 간구하였습니다.

      그런데 외가에서 지내는 20년 동안, 야곱은 하나님께 맹세한 것을 잊고 지냈습니다. 살기가 바빠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가정을 이루고 큰 재산을 모은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께 한 약속을 기억하지 못하였습니다. 외삼촌이자 장인의 안색이 변한 것을 보고야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 말씀하십니다.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31:13) 드디어 야곱은 돌아오기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머뭇거렸습니다. 형 에서와 화해하고 난 뒤에도 벧엘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세겜에서 야곱의 딸 디나가 부끄러운 일을 당한 후에 다시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35:1) 그제야 벧엘에 이르러 거기에 제단을 쌓았습니다(35:7). 비로소 맹세를 지켰습니다.

      흔히 화장실 갈 때 마음과 올 때 마음 다르다고 합니다. 급한 마음에 앞뒤 가리지 않고 맹세를 쏟아놓고는 한숨을 돌리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급하면 급한 대로 반응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하지만 사람에게 한 약속도 신실하게 지켜야 하는데 하물며 하나님께 한 약속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 앞에서의 결심을 지키십시오.

 

      그런데 이렇게까지 서원을 반드시 이행하라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5절 말씀입니다.

      : 5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그것을 듣는 날에 허락하지 아니하면 그의 서원과 결심한 서약을 이루지 못할 것이니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였은즉 여호와께서 사하시리라

      이어지는 말씀은 서원하였을지라도 이행하지 않아도 되는 예외 규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자가 아직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집에 있으면서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나 스스로 자제하기로 서약하였을 경우, 그의 아버지가 자기 딸의 서원이나 딸이 스스로 자제하기로 서약한 것을 듣고도 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면, 그 서원은 그대로 살아 있기에 그대로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딸이 스스로 자제하기로 한 모든 서약과 서원을 아버지가 듣고서 말렸으면, 그 서약과 서원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딸의 서원을 말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딸에게 책임을 묻지 않으십니다. 이는 결혼 전 딸의 서원은 자신이 결심한 내용을 아버지에게 허락을 받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결혼한 여자의 서원에 대하여도 같은 정도로 말씀하십니다. 결혼한 여자가 서원하였거나, 급하게 입술을 놀려 스스로 자제하기로 경솔하게 선언하였을 때, 아내가 하는 맹세를 듣고 남편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면, 그 서원은 그대로 성립됩니다.

      그러나 그의 남편이 그것을 듣고 아내를 말렸으면, 그의 아내가 스스로 한 서원과 자신을 자제하기로 입술로 경솔하게 선언한 것은 무효가 됩니다. 그의 남편이 그것을 듣고 취소시킬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그 여자에게 책임을 묻지 않으십니다(:8). 어린 여자의 결정권이 아버지에게 있는 것처럼, 결혼한 여성의 결정권이 그 남편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기분이 살짝 나빠지기 시작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성경의 내용이 왜 조선 시대의 유교와 같으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근대 이전 유교 문화권에서 통용되던 여성의 지위와 역할을 삼종지도라고 하였습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아버지를, 결혼해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으면 자식을 따라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여자의 평생을 남성 가족에게 종속되도록 규정한 것은 여자에게는 스스로 생각하고 실천할 능력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여자를 끌어주고 여자는 남자를 따라가는여필종부(女必從夫)를 이상적인 남과 여의 모습으로 여기던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성경 역시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만 한 것입니까?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1:27)라고 하십니다. 남자만이 아니라 여자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더욱이 이렇게 지으신 목적이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1:26b)라고, ‘그들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구별하셨습니다. 남자는 흙으로 만드시고, 여자는 뼈로 만드신 것처럼 각각을 독특하게 지으셨습니다. 각각 잘 할 수 있는 것을 잘하기 위하여 돕는 배필이 필요하고, 돕는 배필이 되게 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책임지는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딸이 결혼하기 전에 아버지의 권위 아래 있고, 결혼하면 남편의 권위 아래 있어야 한다는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책임은 법적인 권한을 가진 사람이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식이 약속하면 그 부모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가족 중에 한 사람이 책임질 일을 하면 다른 가족이 책임져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2.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책임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주시고, 그 자유에 대하여 책임지는 존재로 지으셨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책임지지 못 할 일을 하는 것은 말 그대로 무책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책임을 물을 사람에게 책임을 물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서원에 대하여 생각할 여러 가지 내용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구약의 말씀처럼 서원을 지켜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중에는 입다의 서원처럼 당혹스러운 내용도 있기 때문입니다.

      길르앗 사람 입다는 굉장한 용사로, 이스라엘에 왕이 있기 전, 그들을 다스리던 사사입니다. 사사 입다는 암몬 사람과 싸우기 위하여 전장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서원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신다면, 내가 암몬 자손을 이기고 무사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먼저 나를 맞으러 나오는 그 사람은 주님의 것이 될 것입니다. 내가 번제물로 그를 드리겠습니다.”(11:3031[])

      입다가 암몬과의 싸움에서 대승을 거두고 자기 집으로 돌아올 때, 그를 맞으려고 처음 나온 사람은 그의 무남독녀였습니다. 입다는 자기 딸을 보는 순간 옷을 찢으며 부르짖었습니다. “아이고, 이 자식아, 네가 이 아버지의 가슴을 후벼 파는구나.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 것이 하필이면 왜 너란 말이냐! 주님께 서원한 것이어서 돌이킬 수도 없으니, 어찌한단 말이냐!”(:35)

      그래서 어떻게 하였습니까? 입다는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지키기 위하여 자신의 딸을 죽여 태워 드렸습니다. 이것이 구약의 법입니다. 그런데 이런 법을 오늘날도 지켜야 합니까? 만약 이런 일을 한다면 미친 짓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 사람을 제물로 드리는 희생 제사는 이미 완성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9:12)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을 믿는 사람은 그 어떤 제물을 드려서 예배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배는 예수님께서 제물이 되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맹세는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구약의 율법을 은혜의 법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5:33)라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5:34)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한 야고보 형제는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 받음을 면하라”(5:12) 신약은 맹세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각오와 결단이 전혀 필요 없다는 말씀입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여야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10:28)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려는데 각오와 결심 그래서 자기와의 약속이 전혀 필요 없습니까?

      꼭 필요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유일한 조건처럼 설명하는 세례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전서 3:21입니다.

      베드로전서 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세례, 일단 물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것이 더러운 때를 씻어버리는 목욕과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례가 인간의 죄악된 본성을 완전히 씻어버리는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라는 의식에 어떤 마술적인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세례는 단지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고백적 의식입니다.

      세례를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서약입니다. 세례를 받을 때 하나님 앞에서 약속하는 것은 선한 양심을 가지고 살겠다고 계약을 맺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나를 통하여 이루어 가실 것을 기대하는 믿음으로 약속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구약의 율법은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약의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이루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튼튼히 서게 하시고, 우리에게 사명을 맡기시고, 그것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가 됩니다.”(고후 1:20[]).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기대함으로 우리는 순종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앞에서 말씀드린 그 집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제 대답은 이랬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과 약속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귀하다. 지킬 수 있기를 기도해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하지 않으면 죄가 되지만, 하나님이 능력을 주지 않았는데 억지로 하려고 부담스러워하지 말아라. 하나님과 약속을 지키는 것도 은혜이어야 한다!”

      제가 그 교회를 떠났고, 그 사실을 잊었습니다. 몇 년 후, 우연히 길거리에서 그 집사님을 만났는데, 그때는 시한부 종말론인 다미선교회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안타까웠습니다.

      사순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심을 생각하며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를 생각하는 기간입니다. 올해는 특히 탄소 금식에 참여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은 모든 약속을 소중히 여깁니다.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를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기대하고 결심하고 실천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