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여!

민수기 12 : 1 10 (구약성경 214)

      : 1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 2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 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 4 여호와께서 갑자기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에게 이르시되 너희 세 사람은 회막으로 나아오라 하시니 그 세 사람이 나아가매 : 5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로부터 강림하사 장막 문에 서시고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시는지라 그 두 사람이 나아가매 : 6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 7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 : 8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 9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시매 :10 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갔고 미리암은 나병에 걸려 눈과 같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나병에 걸렸는지라

 

      진짜(?) 겨울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나 때는이라고 말하면 꼰대라는데, 어릴 적에 경험하였던 그 추위를 요즘 느낍니다. 건강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도 머지않아 봄이 올 것입니다.

 

      오랜 세월,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렸습니다. 그런데도 점점 더 번성하는 이스라엘을 막기 위하여 최고 통치자 바로는 태어나는 모든 남자 아이를 나일강에 던지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이때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바로의 명령을 어기고 석 달 동안 집에서 길렀습니다만, 그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어머니는 갈대 상자를 구하여다가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 아이를 거기에 담아 강가의 갈대 사이에 놓아두었습니다. 그 아이의 누이는 멀찍이 서서, 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지켜 보고 있었습니다. 마침 바로의 딸이 목욕하려고 강으로 내려왔습니다. 나일강에서 목욕하는 것은 일종의 종교적 정결 의식이었습니다.

      공주가 갈대숲 속에 있는 상자를 보고, 시녀 한 명을 보내서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열어 보니, 거기에 남자아이가 울고 있었습니다. 공주는 그 아이를 불쌍히 여기면서 말하였습니다. “이 아이는 틀림없이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구나.” 공주는 울고 있는 아이를 보고 히브리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측은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바로 이 순간, 그 아이의 누이가 나서서, 바로의 딸에게 말하였다. “제가 가서, 히브리 여인 가운데서 아기에게 젖을 먹일 유모를 데리다 드릴까요?” 동생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누이는 공주가 동생을 발견하자마자 즉시 기회를 놓치지 않고 행동했습니다. 이것은 아이 어머니의 계획이었겠지만 누이의 용감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친어머니가 삯을 받고 자기 아들을 데리고 가서 젖을 먹여 키웠습니다. 아이가 젖을 먹지 않아도 될 만한 나이인 서너 살쯤 되었을 때, 공주는 이 아이를 양자로 삼았는데, “내가 그를 물에서 건졌다.”라면서, 그 이름을 모세라고 지었습니다. 이렇게 모세라는 이름의 한 사람이 세상에 비로소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출애굽기 2장의 모세의 출생과 구출에 관한 말씀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모세라는 이름을 말하기 전까지 누구의 이름도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바로의 딸로 나오는 공주의 이름 하셉수트는 성경에 나오지 않으니 그렇다지만, 모세를 낳은 어머니 요게벳이나, 누이 미리암의 이름도 말하지 않습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이 아들을 낳고, 숨기고, 갈대 상자를 가져오고, 칠하고, 상자에 담고, 갈대 사이에 놓아두는 일을 하였지만,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셨습니다. 멀리서 동생을 초조하게 지켜보고, 용기를 내어 공주 앞에 나서고, 어머니를 유모라며 데려오는 일을 한 누이 미리암도 역시 주인공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하여 그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밝히지 않으신 이름을 스스로 드러내려고 하면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세가 태어나고 8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왕궁에서 왕자로 40년을 보냈고, 광야에서 목자로 40년을 지냈습니다. 호렙산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고, 애굽으로 돌아와, 백성들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 시내산에 이르렀습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백성과 언약을 맺을 때 모세는 중보자였습니다.

      출애굽 한 후, 일 년 되는 11일에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두 번째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그들이 만든 성막에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구름이 임하셨습니다. 구름이 머물면 그들도 머물고, 구름이 움직이면 그들도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을 보여 주는 성막 앞에서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만나를 먹으면서 애굽에서 먹었던 것들을 생각하며 원망하였습니다. 모세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지고 있는 짐이 너무 무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어른 중에서 70명을 세워 모세의 짐을 나누어지게 하셨습니다. 백성에게 메추라기를 보내서 고기를 먹게 하셨습니다(11:1).

      그리고 그들이 들어가게 될 가나안 땅을 정탐하기 위하여 열두 명을 뽑아 보내게 하셨습니다(13:1). 모세와 짐을 나누어질 장로 70명을 세우는 내용과 가나안에 열두 정탐꾼을 보내는 내용 사이에 오늘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1절 말씀입니다.

      : 1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모세가 구스 여인을 아내로 맞았습니다. 모세의 아내였던 십보라가 죽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구스는 애굽의 남쪽에 있었던 에티오피아를 가리킵니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모세가 에티오피아의 공주와 결혼하였다고 기록하였습니다. 동족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여인과 결혼한 것을 미리암과 아론이 비방하였습니다.

      미리암은 모세가 아기로 나일강 강가에 놓였을 때 지켜보았고, 바로의 딸에게 다가가 어머니를 유모로 소개하였던 생명의 은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세보다 열네다섯 살 위였으니, 어쩌면 어머니 같은 누이였습니다. 아론은 모세보다 세 살 많은 형이었습니다(7:7). 그들은 모세에게 이렇게 해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나이 많은 누이와 형으로써 동생의 실수를 바로 잡아주는 일은 할 수 있습니다. 아니, 반드시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세를 비방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비방하다[rB'D다바르1696]는 본래 정돈한다는 뜻인데, 말한다는 뜻으로 자주 사용됩니다. 미리암이 확실하게 질서를 잡아보겠다고 나선 것이었습니다. 2절 말씀입니다.

      : 2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그들은 모세가 구스 여인을 아내로 맞은 실수를 빌미로 모세에게 도전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라는 것으로 모세가 홀로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서는 것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미리암과 아론 자신들이 모세보다 못할 게 없다는 인간적인 오만과 교만에서 모세를 비난하였습니다.

      미리암은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라며 하나님의 말씀에 다른 통로가 있는 것처럼 말하였습니다. 미리암은 나일강 강가에서 자신이 모세를 구해주었다는 생각을 여태껏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미리암의 불행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진리를 가리는 것이었습니다(고후 4:2)

1. 실수를 빌미로 말씀의 권위에 도전하였습니다.

      우리는 모세라는 사람을 신성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도 이렇게 실수할 수 있는 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러할진대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이 독점한 것처럼 말한다면 그는 100% 이단입니다. 자신의 성경해석만이 올바르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따라가면 자칫 자신의 영혼을 사탄에게 넘겨주게 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기억하여야 할 것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그 말씀 앞에서 진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그 권위로 인정하고, 그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12:2b).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겸손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미리암과 아론에게 어떻게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당장 부르셨습니다. “너희 셋은 회막으로 나오너라.”라고 하십니다. 세 사람이 그리로 나갔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개입하십니다. 구름 기둥 가운데로 내려오시어 장막 어귀에 서시고,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셨습니다.

      그 두 사람이 나가 서자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나의 말을 들어라. 너희 가운데 예언자가 있으면, 나 주가 환상으로 그에게 알리고, 그에게 꿈으로 말해 줄 것이다. 나의 종, 모세는 다르다. 그는 나의 온 집을 충성스럽게 맡고 있다. 그와는 내가 얼굴을 마주 바라보고 말한다. 명백하게 말하고, 모호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는 나 주의 모습까지 볼 수 있다. 그런데 너희는 어찌하여 두려움도 없이, 나의 종 모세를 비방하느냐?” 하나님께서 그들을 책망하십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셨습니까? 9절과 10절 말씀입니다.

      : 9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시매 :10 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갔고 미리암은 나병에 걸려 눈과 같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나병에 걸렸는지라

      하나님께서 미리암과 아론에게 진노하고 떠나가셨습니다. 구름이 장막에서 걷혔습니다.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면 이스라엘도 머물고 구름이 움직이면 그들도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구름이 움직인 것이 아니라 아예 사라졌습니다. 더욱이 미리암은 나병에 걸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매우 진노하셔서 엄중하게 징계하셨습니다.

      누이 미리암이 동생 모세에게 너나 나나!’, ‘내가 너보다 못한 것이 무엇이냐?’라고 한 것은 시기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정통성을 두고 싸움을 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쓴 뿌리를 보셨습니다. 이것은 그 후 고라와 그와 당을 지은 사람들이 모세에게 대항하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공동체 앞에서 모세를 세워 주신 것은 오직 말씀의 권위를 세우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아직 성경이 기록되기 이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모세는 그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여 주는 구전의 시대였습니다. 이런 때에 모세를 흔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흔드는 것이었습니다.

2. 백성이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기를 원하십니다.

      여기에서 저는 설교하는 목사로서 언제나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늘 생각나는 이솝의 우화가 있습니다.

      어느 당나귀가 유명한 신의 조각상을 운반하고 있었다지요. 당시 그리스 사람들은 신의 모습을 새긴 조각품을 만들고 숭배하였습니다. 당나귀는 신상을 등에 지고 숲과 들판을 지나 사람들이 많은 어느 마을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성스러운 조각상을 보자 무릎 꿇고 엎드려 절했습니다.

      당나귀는 사람들이 자기를 존경해서 절을 한다고 생각하고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꼿꼿이 들고는 거드름을 피워 댔습니다. 당나귀를 몰고 가던 주인은 채찍으로 당나귀의 등짝을 후려치며 말했습니다. “이런 멍청한 놈아! 사람들이 너에게 경배하는 것은 아니고, 네 등에 있는 신께 경배드리는 거야.”

      신상(神像)을 지고 가던 당나귀는 사람들이 자기 등에 있는 신상에 큰절하는 것을 자기에게 절하는 것으로 착각하여 우쭐하다가 몽둥이로 얻어맞았다는 우화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으로서 어리석은 당나귀처럼 되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제가 말씀의 성실한 전달자가 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이단 교주 비슷하게 되는 위험성과 달리,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우습게 여겨 말씀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옥한흠 목사님의 이야기에서 이런 내용을 기억합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님을 따라 사경회에 따라갔다가 은혜를 받았답니다. 말씀에 은혜를 받고 매일 예배당에서 살다시피 하는 어린 그에게 예배당에 다니는 사람들이 너는 커서 목사가 돼라!’라는 했답니다. 그러나 그런 말을 듣는 것이 무척이나 싫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목회자의 가난한 삶을 보면서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화장실에서 장로님들이 목사님 욕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길을 가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목사가 되게 하셨으니, 자신은 하나님의 별난 은혜를 받은 것이 틀림없다고 하였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조직이나 권위는 도전을 받고,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의 갈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계급투쟁만이 역사의 흐름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서로 세워 주고 이끌어주는 것이 역사를 파멸이 아니라 중흥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사명으로 아는 것은 본인에게 엄청난 해악입니다.

      성경에서 보는 고린도교회는 사람의 썩은 냄새가 진동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후 2:17) 하나님의 말씀을 팔아먹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순전하게 전하고 신실하게 받는 사람들이 또한 있습니다. 제가 말씀의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자신의 욕심 때문에 저를 욕하다가 자신도 은혜에서 떨어지고, 다른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사람이 없기를 늘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순종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형식주의를 멀리하면서 형식을 갖추고, 권위를 지키면서 권위주의에서 벗어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불완전한 것이 가장 완전하다는 말을 마음에 새겨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머무르지 않고 계속하여 온전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8절 말씀입니다.

      : 8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하나님께서 모세를 가리켜 그와는 내가 얼굴을 마주 바라보고 말한다. 명백하게 말하고, 모호하게 말하지 않는다.”[]라고 하십니다.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니 모세에게 대항하지 말라고 미리암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오늘날 누가 이런 모세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습니까?

      모세는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18:15) 모세와 같은 선지자, 아니 모세는 하나님 집의 종이었는데,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 선지자라고 하였습니다(3:22).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가 하였던 말도 예수님이 그 선지자라는 것입니다(1:45).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하였던 말도 이것입니다(6:14). 스데반은 모세를 대신할 선지자가 예수님이라고 하였습니다(7:37).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을 때, 예수님의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하얘졌습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더불어 말하였습니다. 그때 구름 속에서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7:5b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모세와 같은 선지자는, 아닌 모세와 전혀 비교할 수 없이 탁월하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분께 자신의 삶을 집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명령에 순종하고, 그 모범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3.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야 합니다.

      어느 교회에 새 목사님이 부임하셨습니다. 교인이 많지 않았지만 모두 목사님을 환영하고 좋아하였습니다. 그런데 유독 남자 집사님 한 분이 새로 오신 목사님을 싫어했습니다. 아무 이유도 없이 무조건 싫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하는 모든 일이 싫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딱한 노릇입니다. 심지어 목사님을 배척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집사님의 아내 되는 여자 집사님은 지혜로운 분이었습니다. 남편이 그토록 목사님을 싫어하는 이유를 곰곰이 따져보았습니다. 아무리 따져보아도 자기 남편이 목사님을 싫어해야 할 이유가 없는데 싫어한다는 것이 이상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자기 남편이 목사님을 싫어하는 이유를 알아냈습니다.

      남자 집사님이 어렸을 때 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아들을 데리고 재혼하였습니다. 그런데 새아버지가 그를 몹시 구박하였습니다. 이것은 남자 집사님에게 숨겨진 상처였습니다. 그런데 새로 온 목사님의 목소리가 그를 구박하였던 새아버지와 똑같았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목사님을 무조건 싫어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제 목소리가 여러분을 괴롭혔던 사람의 목소리를 닮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닮았더라도 치유하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 하게 하려는 것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래서 더욱 예수님께 초점 맞추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은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당연합니다. 눈에 보이고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는 것도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그 말씀을 믿는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합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이 성경의 권위에 순종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대항한 누이 미리암을 나병환자가 되게 하시면서까지 말씀의 권위를 지키셨던 것을 잊지 마십시오. 말씀 앞에서 겸손한 사람들로 살아가는 2021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