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반심(叛心)한 솔로몬

열왕기상 11 : 6 11 (구약성경 531 )

     : 6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따름 같이 따르지 아니하고 : 7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 8 그가 또 그의 이방 여인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한지라 그들이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 : 9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10 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11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함께 하신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깨달아 알고, 예배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어느 날, 다윗 왕이 반지세공사를 불러서 이런 명령을 하였다지요. “나를 위한 반지를 만들라! 그 반지에 내가 큰 전쟁에서 이겨 환호할 때도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며, 내가 큰 절망에 빠져 낙심할 때도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어라!”. 반지세공사는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반지에 새겨 넣을 글귀를 무엇으로 해야 할지, 몇 날 며칠을 고민하였지만,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요구한 것은 교만할 때의 경고와 좌절할 때의 격려, 두 가지를 동시에 포함하는 말이어야 하였기 때문입니다. 정반대의 두 가지 상황을 직관적으로 잘 조합한 말을 만든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고민하던 반지세공사는 무릎을 쳤습니다. 그것은 지혜롭기로 소문난 솔로몬 왕자에게 도움을 청하면 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 왕자에게 달려갔습니다. 그 때, 솔로몬 왕자가 알려준 글귀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이었습니다. 승리의 기쁨도 실패의 슬픔도 지나가니 교만도 않고 좌절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지를 받아든 다윗 왕은 반지와 글귀에 만족하여 반지세공사에게 큰 상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 지혜가 솔로몬에게서 나온 것을 알고,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가진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 솔로몬의 지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알고 있는 대로 솔로몬은 지혜의 사람입니다(왕상4:30).

 

     솔로몬, 그는 정녕 지혜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솔로몬을 또 어떤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6절 말씀입니다.

     : 6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따름 같이 따르지 아니하고

     솔로몬의 소문을 들은 모든 백성과 왕들이 그의 지혜를 들어서 배우려고 몰려왔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스바의 여왕입니다. 그의 명성을 듣고, 그를 시험하여 보려고, 예루살렘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러고는 내가 내 나라에서 당신의 행위와 당신의 지혜에 대하여 들은 소문이 진실하도다”(대하 9:5)며 감탄하였습니다.

     그랬던 솔로몬에 대하여, 오늘 말씀은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라고 하십니다. 솔로몬이 악을 행하였다는데, 그것도 하나님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였답니다. 하나님이 사람과 같은 눈[@yI[아인5869]을 가지셨을 리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살펴보시고 알고 계시는 하나님을 가리켜 눈을 가지셨다고 표현합니다.

     사람이 자신의 눈으로 보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너무 멀리 있어도 보지 못하지만, 너무 가까이 있어도 보지 못합니다. 어렸을 때, 어른들이 물건을 손에 들고, 안 보인다며 자꾸 멀리 드는 것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노안이었습니다. 사람은 멀리 있는 것뿐만 아니라, 가까이 있는 자신의 마음도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중심까지 보십니다. 사람들이 보이고 싶지 않은 것들도 모두 다 보십니다. 하나님께 숨길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이런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보셨을 때, 그에게서 악한 것이 보였습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여전히 지혜로운 사람이었으나, 하나님이 보실 때는 악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솔로몬의 문제였습니다. 또한 인간의 진짜 문제입니다.

1. 하나님의 눈앞에서 악을 행합니다.

     솔로몬은 그의 아버지 다윗이 하나님을 온전히 따랐던 것과 같이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어(삼상 16:13) 점점 채워져서 마침내 온전하여 졌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점점 부족함이 드러나다가, 온전하지 않음이 완전히 드러났습니다. 이런 솔로몬이 한 상징적 행동입니다. 7절 말씀입니다.

     : 7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솔로몬의 생애 최고 최대의 치적은 하나님의 성전을 지은 것입니다. 다윗이 그토록 짓고 싶었으나 지을 수 없었던 성전을 솔로몬이 지었습니다. 그 성전을 솔로몬의 성전이라고 부를 만큼, 그의 치적은 영광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그 성전에서 마주 보이는 앞산에 모압의 그모스와 암몬의 몰록을 위한 산당도 지었습니다.

     이것은 할렐루야 아멘! 남묘호렌게쿄!’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을 지은 그 사람이, 바로 그 앞에, 우상을 위한 산당을 지었습니다. 예루살렘 앞산은 감람산을 가리킵니다. 감람산은 성전이 세워진 성전산보다 약 30m가 높았습니다. 더욱이 그쪽은 동쪽이었습니다. 동쪽은 하나님이 오시는 곳을 상징합니다.

     이슬람의 사원은 모두 메카를 향하여 있는데 비하여, 유대인의 모든 회당은 태양이 뜨는 동쪽을 향하도록 지었습니다. 성전은 동쪽으로 향하였는데, 동쪽 문으로 나가, 기드론 골짜기를 건너, 올려다 보이는 곳에 산당들을 세웠습니다. 성전에서 제물을 드리고 돌아서면 보이는 것이 우상을 모시는 산당들이었습니다.

     솔로몬 왕은 외국 여자들을 좋아하였습니다(왕상 11:1). 이집트의 바로의 딸 말고도, 모압 사람과 암몬 사람과 에돔 사람과 시돈 사람과 헷 사람에게서, 많은 외국 여자를 후궁으로 맞아들였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이것이 그의 지혜였을 수 있습니다. 그는 이웃나라들과 외교관계를 고려하여 결혼하였던 것입니다.

     성경은 솔로몬의 여성 편력에 대하여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3)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즘 우리나라 사학계에서 일본에 의하여 왜곡된 내용이라는, 백제 의자왕의 삼천 궁녀에는 솔로몬이 미치지 못합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솔로몬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도 돌렸다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에서 솔로몬에게 시집오는 여인들이 그들이 섬기던 우상을 가지고 왔습니다. 솔로몬은 그의 외국인 아내들이 하자는 대로, 그들의 신들에게 향을 피우며, 제사를 지냈습니다(:8). 하나님을 섬기는 성전을 지은 솔로몬이 성전 바로 앞산에 아내들이 섬기는 신들을 위하여 산당을 세웠고, 함께 예배하였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지은 지혜의 책인 잠언에서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잠언 16:2)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감찰하신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지혜의 왕이라는 솔로몬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9a절 말씀입니다.

     : 9a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분명한 것은, 처음부터 솔로몬의 마음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왕이 되었을 때, 처음 평가는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왕상 3:3)였습니다. 그는 기브온이라는 곳에서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가 번제로 드린 제물은 일천 마리가 넘었습니다.

     그 날 밤, 솔로몬은 꿈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내가 너에게 무엇을 주기를 바라느냐? 나에게 구하여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는 먼저 나는 아직 나가고 들어오고 하는 처신을 제대로 할 줄 모릅니다.”(:7)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종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주셔서, 주님의 백성을 재판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9)고 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그가 그렇게 요청한 것이 마음에 드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나는 네 말대로,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준다. 너와 같은 사람이 너보다 앞에도 없었고, 네 뒤에도 없을 것이다. 나는 또한, 네가 달라고 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화도 모두 너에게 주겠다. 네 일생 동안, 왕 가운데서 너와 견줄 만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1213).

     그런데 어느 때부터,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은 여전히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의 마음은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서 돌아섰습니다. 여기에서 돌리다[hf;n:나타5186]는 말은 구부리다는 말입니다. 쭉 뻗어가다가 살짝 기울어진 것입니다. 살짝 기울어졌는데, 그렇게 한참으로 지나니 멀찍이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솔로몬의 마음은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떠나다[![5973 전치사]는 더불어 이야기할 수 있고, 더불어 기뻐할 수 있고, 서로에게 친절을 베풀 수 있도록 함께 하던 관계였는데 깨어진 것입니다. 함께 있던 관계에서, 함께 있지 못할 관계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에게서 마음을 돌려 떠납니다.

     아무리 지혜로운 솔로몬이라지만, 하나님에게서 마음을 돌려서 떠나니,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솔로몬 그 자신의 말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9:10)였습니다. 그런데 지혜의 근본인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서 떠나니 어리석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트로트가 대세랍니다. 코로나19 여파로 집에만 있어서라나, 우울한 마음을 달래는 데는 이만한 것이 없어서라나, 우리나라 사람의 정서에는 이것이 이라나, 어떤 표현에 의하면 트로트 광풍이 불고 있습니다. 교회마다 권사님들이 서로 좋아하는 트로트 가수를 두고 신경전을 벌인답니다. 트로트를 너무 좋아하지 말라는 목사님과 교인 간에 언쟁도 있답니다.

     이렇다보니 라디오에도 자주 소개되는데, 들어보니 제법 은혜스러운(?) 가사가 있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 있을 때 잘해 흔들리지 말고 / 가까이 있을 때 붙잡지 그랬어 / 있을 때 잘해 그러니까 잘해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하시는 말씀처럼 들렸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 그는 계속해서 잘 했어야 했습니다. 아무리 사랑이 좋고, 외교관계가 중요하고, 자신만만한 지혜로움이 그에게 있었을지라도, 흔들리기 전에 잘했어야 했습니다. 조금씩 그리고 계속해서 흔들리다 보니 결국 하나님에게서 완전히 떠났습니다.

     이스라엘의 처음 왕 사울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마음에는 관심이 없는 무심이었습니다. 다윗은 처음에는 보잘 것이 없었고, 자라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하나님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어 온 마음을, 그의 전심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처음에는 멋지게 시작하였지만 반대로 돌아서는 반심(叛心)이었습니다.

     솔로몬의 타락이 그의 통치 기간 중, 어디쯤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는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처음부터는 아니었습니다. 성전을 지어 봉헌하며 감사를 드릴 때도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자신을 위한 왕궁 건축이 마무리 되고, 여러 아내들을 위하여 산당을 지어줄 수 있게 되던 무렵부터 그는 총명을 잃었을 것입니다.

     다윗이 서서히 이루어갔던 것의 반대로, 솔로몬은 서서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경고입니다. 성령님께서 함께 계심에 대한 믿음을 굳게 잡고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이었던 솔로몬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마음을 돌려서 떠났습니다. 이렇게 된 데는 처첩들의 유혹이 있었습니다. 늙고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9b에서 10절 말씀입니다.

     : 9b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10 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 두 번씩이나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첫 번째는 솔로몬이 기브온에서 일천 번제를 드리고 나서 그의 꿈에 나타나셨던 것입니다(왕상 3:5-14). 이 때, ‘너는 구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듣는 마음을 구하였습니다. 이것이 지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 두 번째는 성전과 왕궁 건축을 마친 후였습니다(9:2-9). 이때는 이미 경고하시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만일 너희나 너희의 자손이 아주 돌아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솔로몬에게는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잊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과거의 말씀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기억하고 지켜야 할 말씀이었습니다. 더욱이 두 번씩이나 직접 하신 말씀을 그는 지키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였습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완전한 사람의 모범으로 소개되는 다윗은 결코 완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하여, 충직한 장군 우리아를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차지하였습니다. 하지만 선지자 나단의 고발에 철저하게 돌이켜 회개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복 있는 사람의 길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1:2)는 길을 걸었습니다. 이런 아버지 다윗을 닮은 듯, 백성을 위하여 듣는 마음을 하나님께 구하였던 솔로몬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솔로몬의 재판 이야기가 있습니다.

     같은 집에서 함께 살고 있던 두 여자가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았습니다. 불행하게도 한 여자가 잠을 자다가, 그만 자기의 아이를 깔아뭉개었습니다. 그 여자는 죽은 자기 아이와 옆에서 자고 있는 여자의 살아있는 아이를 바꾸었습니다. 날이 밝아 아이를 자세히 볼 수 있게 되고나서야 그 집안에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두 엄마는 살아 있는 아이가 자기의 아들이고, 죽은 아이는 다른 여자의 아들이라고 서로 우겼습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솔로몬은 살아있는 아이도, 죽은 아이도 각각 반으로 나누어 가지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이에 살아있는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살리기 위하여, 자신의 아이를 상대방 여자에게 주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이 때, 솔로몬은 살아 있는 아이를 죽이지 말고, 아이를 양보한 저 여자에게 주어라. 저 여자가 그 아이의 어머니이다.”(3:27)고 판결하였습니다. 솔로몬은 자기의 아이를 남에게 주어서라도 살리려는 엄마의 마음을 들었습니다. 이것이 솔로몬의 지혜였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한 지혜는 백성의 마음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진짜 어머니의 마음을 들었습니다. 이랬던 솔로몬이, 그 자신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조차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니, 그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떠났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보시는 앞에서 악을 행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일곱 교회에 보내시는 말씀의 결론은 한결같이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2:7, :11, :17, :29, 3:6, :13, :22)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평균수명이 70세 이하이던 때의 이야기입니다만, ‘골골 팔십이란 말이 있습니다. 병이 오래되거나 몸이 약하여 시름시름 앓는 것을 골골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오히려 팔십 살까지 산다는 말인데, 골골하여 건강관리를 잘 하였다는 말입니다.

     그 반대로 자신의 건강만 믿고 과로하고, 과식하고, 과음하면 불행한 결과를 맞게 될 수 있습니다. 평소에 전혀 병치레를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큰 병에 걸려 넘어지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사실은 큰 병이 나타나기 전에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였기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결국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영적 신호를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는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자신이 약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기 위하여 말씀과 기도 그리고 찬양에 힘을 쏟습니다. 하지만 회개하지 않는 마음은 진노를 쌓는 것입니다.(2:5)

     코로나19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편하다는 사람조차 생겨나고 있다고 합니다. 하기야 한두 주간, 몇 달 동안 예배당에서 예배 안 드린다고 큰일 나겠습니까?() 온라인으로 쭉 드리면 얼마나 효율적이고 편합니까!() 어디에나 계신 하나님을 어디서나 예배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우리는 자신이 진정한 예배자인지를 묻고 답해야 합니다. 이것은 예배당에 모여서 예배하는 것만이 예배냐 아니냐 라는 질문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아무리 예배당에 모여서 예배해도, 하나님의 마음을 듣지 않는다면 예배가 아닙니다. 말씀에 자신의 마음을 기울여 하나님의 마음을 듣지 않으면 결코 예배가 아닙니다.

     성경은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23)고 하십니다. 마음을 지키기 위하여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살기 위해서는 초록색 신호등이 아니라, 붉은색 신호등을 잘 보아야 합니다. 할렐루야!